
1908년 어느 날 전북 군산.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17세 남성이 상투를 잘랐다. 일본으로 건너가는 도항증(渡航證)을 막 얻은 참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부안군 줄포에 있는 집안 어른들은 장손인 그의 유학을 완강하게 반대했다. 일본행 배를 타기 이틀 전, ‘모친 급환’이란 편지와 함께 줄포에서 머슴이 그를 데리러 왔다. 급히 본가로 가던 남성은 편지가 자신의 일본행을 만류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채고 다시 군산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부모에게 용서를 비는 편지를 쓰고 상투 자른 사진을 찍어 보낸 뒤, 친구와 함께 시모노세키행 배에 오른다. 그는 훗날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이다. 함께 유학한 친구는 그의 평생 동지로 동아일보사 사장과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고하 송진우 선생(1890∼1945)이다. 만약 두 사람이 당시 유학을 가지 않고 발길을 되돌렸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촌탐사’는 대한변호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