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중반 서유럽에서 남성이 발레를 구경하거나 발레에 참여하려고 하면 놀림과 의심이 쏟아졌다. 영국 런던에서 남성 무용수는 무의미하다고 여겨져 노인이나 익살스러운 캐릭터만 맡았다. 잘생긴 왕자나 청혼자의 역할은 남장을 한 여성 무용수가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남성 무용수는 발레리나를 들어 올리는 역할에 국한됐다. 발레단의 예산을 아끼기 위해 남성 무용수를 버스 운전기사로도 일하게 하자는 논의도 오갔다. 하지만 러시아에선 달랐다. 춤추는 기술은 정확성, 체력, 강인함 같은 전사의 미덕을 보여주는 명예로운 능력으로 여겨졌다. 혈기 왕성한 남자 무용수들이 타이츠를 입고 자유롭게 무대를 누볐다. 군사 훈련, 검술 등 군대 문화 속 춤의 역할과도 비슷했다. 볼쇼이 발레단의 남자 무용수는 붉은 군대 공연단의 무용수와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당대 러시아 발레의 차별성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발레단 ‘발레 뤼스’의 흥행 성공을 이끌며 유럽 전역에 이를 소개한 인물 세르게이 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