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기억 속 가장 완벽했던 휴가 중 하나는 서해안 3성급 리조트의 알록달록한 워터파크에서 보낸 며칠이었다. 극성수기 만실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수많은 리조트 틈새에서 운 좋게 건졌는데, 막상 가보니 왜 이 성수기에 여기만 이토록 ‘합리적인’ 가격의 방이 남아 있었던 건지 뒤늦게 수긍이 가는 상황이었다. 객실 청소도 안 돼 있었고 체크인 시간은 자꾸 미뤄졌다. 그래도 거기서 보낸 며칠은 정말 좋았다. 그 작은 워터파크 비치베드에 누워서 내도록 보르헤스를 읽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르헤스 책은 절판 상태였다. 휴가 전에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많이 뒤졌다. 문인들 모임에서 보르헤스 찬양을 엿들은 뒤였다. 도대체 어떤 작가길래 다들 한목소리로 극찬하나 궁금했다. 어렵게 절판 책을 구했는데 배송에도 시간이 한참 걸려 애를 태웠다. 여름휴가를 떠나기 직전, 극적으로 갱지 박스에 담긴 낡은 전집 5권이 묶여 배송됐다. 기뻤다. 완벽한 여름휴가를 위한 모든 채비를 마침내 마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