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선일체’ 강요하던 때…조선 어린이들이 본 제국의 모습은?

132192468.1.jpg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이듬해 조선에도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일제는 “내선일체(內鮮一体·일본과 조선은 하나다)”를 외치며 ‘제3차 교육령’을 통해 일본어 교육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교육령을 계기로 조선에 사는 일본인과 조선인 소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글짓기 경연대회가 열렸다.당시 글짓기 대회는 1938년부터 1944년까지 총 7회에 걸쳐 열렸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사의 일본어 어린이 신문 ‘경일소학생신문’이 주최했다. 조선총독부와 경성제국대학, 경성일보 관계자들이 심사를 거쳐 우수작을 선정했다. 1∙2회 수상작은 ‘총독상 모범 문집’이라는 단행본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이때 어린이들이 쓴 글 중 일부를 모아 엮은 책이다.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화와 연기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가 한일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배우로 활동했던 그는 여배우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1940년 개봉해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수업료’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