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패션위크로 떠들썩하던 밀라노의 가을은 올해 유난히 고요했다. 회색빛 하늘 아래, 도심 전광판마다 한 남자의 사진이 걸렸다. 백발에 고요한 눈빛, 언제나처럼 완벽히 각 잡힌 슈트. 밀라노를 패션의 수도로 이끈 조르조 아르마니였다. 9월 4일(현지 시간) 그가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뉴스로 밀라노는 잠시 숨을 죽였다. ‘레 조르조(Re Giorgio·조르조 왕)’라는 애칭이 증명하듯 그는 이탈리아 패션의 상징이자 우아한 테일러링의 대명사였다. 남성복이 이토록 고매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가 반세기 동안 써내려 온 미학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1934년 이탈리아 피아첸차에서 태어난 그는 스무 살 때까지만 해도 의사를 꿈꾸는 의대생이었다. 대학에서 3년간 의학을 공부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밀라노의 백화점 라리나셴테에서 일하며 진로를 틀었다. 이후 상품 바이어를 거쳐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60년대 중반 니노 체루티가 운영하는 남성복 브랜드 히트맨에서 크리에이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