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정약용의 실학, 강진 유배에서 나왔다

132910277.4.jpg‘벼락이 산의 나무를 친다 해도/무슨 뜻이 있어 그런 것이겠느냐/그저 힘써 착한 일을 행해야지/천지는 원래 돌고 도는 거니까’ 1802년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지은 ‘벽력행’의 한 구절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탁월한 학문과 문장력으로 관직에 진출한 다산은 초계문신과 한림학사를 모두 거머쥐는 등 정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1800년 정조가 승하(昇遐)한 뒤 정치적 기반을 잃었고, 천주교 탄압 사건인 신유박해에 연루됐다는 이유와 정적들의 견제가 겹쳐 마흔이 되던 무렵 강진으로 유배된다. 정조의 개혁 정치 선봉에서 거침없이 활약했던 그로서는 하루아침에 죄인 신세가 된 처참한 추락이었다. 그 역시 울분, 고통, 슬픔의 시편을 썼다. 하지만 ‘벽력행’을 쓴 이후 다산은 절망과 상실보다는 넉넉한 품과 단단한 성찰로 사유를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서 글만 읽는 유학자가 아니라, 들판과 장터를 거닐고 백성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실천적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