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사형제 폐지 관련 국제규약에 가입하라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추후 재권고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인권위에 따르면 정부는 인권위가 지난해 전원위원회를 열어 위원 11명 만장일치로 의결한 사형제 폐지 관련 국제규약 가입권고 안건에 대해 “국민 여론과 법 감정, 국내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실상 불수용 의사를 밝혔다. 법무부, 외교부 등 관련 부처는 지난 2월 각각 인권위에 “중장기적으로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공식 답변을 보냈다. 인권위가 가입을 권한 국제규약은 ‘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다. 사형집행 중지 의무 및 폐지 절차 마련, 전쟁 중 군사범죄에 대한 사형 유보 등을 담아 1989년 제44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중 해당 규약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는 4곳으로 한국을 비롯한 미국, 일본, 이스라엘 등이다. 정부는 지난해 3월에도 2017년 유엔인권이사회(UNHRC) 국가별 정례 인권 검토(UPR)에서 나온 218개 권고 중 ‘사형제 폐지’를 비롯한 97개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정부 결정에 대해 “추후 절차를 거쳐 사형제 폐지, 대체 형벌 제도 도입 등을 정부에 다시 권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보·중도 헌법재판관 가세…사형제 폐지될까 정부가 사형제 존치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시선은 헌법재판소로 쏠린다. 지난 4월 중순 진보·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정식 임명돼 임기를 시작하면서 헌재 구성에서 보수 색채가 한층 옅어져서다. 새 헌법재판관 임명 직전 본지가 재판관 9명이 그동안 사형제에 대해 밝힌 의견을 분석한 결과 , 6명이 사형제에 위헌 의견을 낼 것으로 전망됐다. 앞서 유남석 헌재 소장과 이석태·이은애·문형배 재판관 등은 공개적으로 사형제 폐지 또는 폐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기영, 이미선 재판관은 진보 성향 판사들의 학술단체로 알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헌재는 지난 2월 헌법소원이 청구된 사형제와 관련해 내년쯤 결론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1996년, 2010년 청구된 헌법소원에 헌재는 각각 7(합헌) 대 2(위헌), 5(합헌) 대 4(위헌)로 모두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고유정 등장에…“사형제 폐지 반대” 여론 ‘UP’ 한국은 1997년을 마지막으로 20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36·구속) 사례 등 최근 잔혹 범죄가 잇따르자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사형집행을 주장하는 청원이 다수 올라오는 등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간 사형제 폐지 반대 여론은 찬성 측보다 항상 우위를 점해왔다. 인권위가 지난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8명(79.4%)이 ‘사형제는 유지돼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사형제를 당장 폐지하거나 앞으로 폐지하자는 비율은 각각 4.4%, 15.9%에 불과했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