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폭우 극한 날씨에 여기저기 땅꺼짐…올여름도 발밑 '불안'
여름의 막바지였던 지난해 8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4차선 도로에 차 한 대가 통째로 빠질 정도의 땅꺼짐이 발생했다. 가로 4m, 가로 6m. 깊이는 2.5m로 땅꺼짐 깊이 중에서는 상위 9%에 들 정도로 컸다. 이런 크기의 땅꺼짐이 메워지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올해 여름,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여전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사고 지점에 새로 덮인 아스팔트는 이곳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주변보다 새까만 색을 띠었다. 그 위로는 1톤 화물차량부터 승용차, 오토바이가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지나가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직장을 다닌다는 30대 강모씨는 이 옆을 지나가면서 "아무래도 비가 많이 오면 (땅꺼짐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며 "저기(지난해 사고 지점) 말고 그 옆에 일어날 수도 있고…"라며 우려했다.
사고 현장과 150m 떨어진 곳에 가게를 운영하는 장채영(35)씨는 "아스팔트만 해도 비 많이 오면 함몰된 곳이 많이 보이는데 그때 싱크홀 이후론 이걸(함몰) 가볍게 볼 수 없었다"며 "비가 오면 잠재적 위험성도 있고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만 72건의 지반침하가 발생했다. 2~3일에 한 번꼴로 땅꺼짐이 생긴 셈인데 기습폭우가 내렸던 5월에만 44건이 집중됐다. 이렇다 보니 최근 들어 국지성 호우가 잦아지고 폭염과 폭우를 반복하는 여름, 땅꺼짐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른 장마가 한 차례 지나갔던 지난 8일 인천 서구 석남동의 한 도로에 지름 2m, 깊이 2.5m 규모의 땅꺼짐이 발생했다. 그런데 시간당 30mm의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인 9일과 10일, 서구 당하동에서 깊이 1m의 땅꺼짐 2개가 잇따라 발견됐다. 이 둘의 원인은 연약 지반침하 등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반침하 사고 절반 이상이 여름에 발생 국토안전관리원이 지난해 9월 발간한 '2024 지하안전 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반침하 사고는 2019년부터 5년 동안 957건 발생했다. 8월이 241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6월(138건), 7월(130건) 순이었다. 전체 지반침하 사고의 절반 이상(53.2%)이 여름인 6~8월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후가 땅꺼짐의 주원인인 '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강수량이 집중되는 여름에 땅과 물이 움직이면서 지반이 내려앉는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는 "장마철에 비가 오면 땅속 지하수가 올라온다. 그러다가 비가 안 오면 지하수가 밑으로 꺼진다"며 "물이 내려가면서 토사를 같이 흘려 가면서 땅꺼짐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땅꺼짐은 지반이 연약한 하천 근처, 매립된 지역에서 많이 발생한다"며 "지하수는 일정한 수위를 가지고 가는데 국지성 호우나 비에 의해서 갑자기 수위가 올라왔다가 내려가면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부연했다.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조원철 명예교수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절대적"이라며 "기후변화로 인해 극한의 가뭄이나 폭염, 호우, 홍수가 일어나면 땅꺼짐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극한의 홍수로 한강 수위가 높아지면 땅속으로 물이 더 세게 들어간다. 그러다가 수위가 낮아지면 땅속에 있던 물이 다시 한강으로 세게 들어온다"며 "가뭄이 오면 땅속에서 물이 받치고 있는 힘이 없어져 모래, 자갈이 같이 내려앉는다"고 분석했다.
더 정밀한 조사 필요…결국은 지하 공사 줄여야이에 땅속을 미리 탐사해 대비하고, 빗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거론된다. 조 교수는 "지금까지 (땅꺼짐이) 발생했던 지역과 지하철, 상수도, 하수도 등 대규모의 땅 파기 공사를 했던 곳을 조사해야 한다"며 "조사해서 땅속에 공동(空洞)이 발생되면 흙을 넣어 다지는 것이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 효과적인 예방과 조사를 위해 "3~5m 깊이까지 탐사하는 GPR(지표투과레이더)이 필요하다"며 "이를 여름 장마철이 가장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봄, 가을에 측정해 차이가 있으면 땅을 메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에서 이를 가져오기 위한 재정을 투입하고 지속적으로 일거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서울시는 지난달 15일 지반침하로 인한 시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GPR 탐사 지도'를 만들어 공개했다. GPR 탐사한 구간은 지도에 선으로 표시되고, 해당 구간의 조사 기간 등 정보를 확인 가능하도록 했다. 탐사 결과 공동(빈 공간)이 발견된 구간과 발견되지 않은 구간을 각각 보라색, 파란색으로 나눠 표시했다. 하지만 현재 GPR 탐사는 지하 2m 깊이까지만 탐지가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최 교수는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지하 굴착 공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며 "강동구 명일동, 광명 신안산선 광명 등 모두 밑으로 터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터널이나 지하 깊은 곳을 굴착했던 곳에서 (땅꺼짐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빗물이 땅속에서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게 가장 좋다"며 "결국 지하 굴착 공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최 교수는 "빗물이 갑자기 저하되지 않도록 하수관 등을 통해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방안들도 있다"며 "아니면 비가 와서 땅꺼짐이 발생하기 전에 전조 증상을 파악해서 조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조 증상은 도로나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해지거나 움푹 들어가는 현상, 도로에서 갑자기 물이 솟아나거나 도로 일부가 젖어있는 현상, 최근 상하수관 등 공사를 한 구간 표면에 높낮이 차이가 발생하는 현상 등으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곳을 선제적으로 파악해 미리 조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