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의혹 더해 '역차별' 언사…여가부 소생카드 맞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단언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표 공약은 '여성가족부 폐지'였다. 특히 당시 정부가 '성범죄 처벌 강화'와 '무고죄 처벌 강화'를 동일선상에 두면서 백래시(backlash·사회 변화에 대한 반동)가 본격화했다. 그 이후 여가부는 2023년 잼버리 파행사태 때 주무를 맡았던 걸 제외하면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사실상 개점휴업으로 명맥만 유지했을 뿐이다. 강선우 '갑질 논란'에 빛바랜 여가부 회생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부터 여가부 존속 필요성을 적극 주장해왔다. 그래서 자연히 정권 교체는 여가부 소생의 신호탄으로 읽혔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가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하겠다고 밝히면서 그런 기대가 커졌다. 적어도 여가부를 사실상 보건복지부 계열사쯤으로 취급한 윤석열 정부와는 분명히 다를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웬걸. 당초 무난한 청문회가 예상됐던 강선우 여가부장관 후보자는 이른바 '청문회 슈퍼위크' 폭탄의 뇌관이 돼버렸다. 낡디낡고 국민적 반감이 강한 '갑질'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다.   의정활동의 파트너인 보좌진에게 가정집 쓰레기 처리 또는 변기 수리 등을 지시했다는 증언들은 공분을 불렀다. 국회 직원 인증을 요하는 온라인 익명게시판에서는 "다들 알고 있던 게 (이제야) 보도된 것", "방송(내용)은 새 발의 피" 등의 피드백이 잇따랐다.   특히 민주당 보좌진으로 추정되는 작성자가 "우리 인격을 훼손한 것까지 무마하는 것이 우리 업무범위인가. 이걸 커버하라는 게 2차 가해"라고 지적한 점은 뼈아프다.  대선캠프 일선에서 전력투구한 보좌관들 중 내각 구성에 일부러 초 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때문에 '한 명의 낙마도 허용할 수 없다'는 민주당의 입장이나,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려는 듯한 움직임은 자기 식구들의 실소를 불렀다. 사실 "부덕의 소치"(강 후보자)로 치부될 일만도 아니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여가부는 △양성평등정책의 기획·총괄 및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 △청소년 활동·복지 지원 및 보호 △가족정책의 수립·조정·지원 △여성·아동 폭력피해 예방 및 보호 등을 맡고 있다. 사회적 약자 대변과 이들의 권익 개선이 주 업무인 셈이다. 그런 탓에, 여성계에서는 '직무 관련성이 없는 심부름 의혹이 있는 후보가 평등과 다양성, 약자보호의 가치에 부합한지 의문'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 있다"면서 '역차별' 언급한 이유?강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우리 사회에 구조적·문화적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 있게 답했지만 이를 해결할 의지와 감수성을 입증했는지는 의문이다.   장관직 지명 직후 '역차별'을 언급했던 것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선택하지 않은,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들로 차별이나 '역차별'을 받지 않게 입체적이고 경도되지 않은 시선으로 살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역차별. 이 단어가 당황스럽게 읽히는 건 윤석열 정부에서 여가부 폐지론에 힘을 실은 동력이 바로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론이었기 때문이다. 전문성에서도 "선택적 페미니즘" 비판갑질 논란을 일소할 정책 전문성이 있는지도 찜찜하긴 마찬가지다. 민주당에서는 강 후보자가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에서 인간발달·가족학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를 지낸 점 등을 들어 적임자임을 내세운다. 여가부의 기능은 여성(성평등), 가족, 그리고 청소년을 포괄한다. 이 중 성평등정책 전문성이 있는지는 강 후보자가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강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자료에서 시급한 과제로 양육비 선지급제·아이돌봄서비스 등을 꼽은 반면, 여성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비동의 강간죄'에 대해선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유엔(UN)이 수차례 입법을 권고한 차별금지법 등을 두고도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전향적 성평등 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입으로는 '확대'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여가부 역할을 선제적으로 제한해 스스로 존립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비판도 거세다. 12·3 비상계엄 직후 응원봉으로 광장을 수놓은 상당수 인원이 '2030 여성'이었음을 떠올려보면 안타까움은 더해진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에서 '비동의 강간죄' 공약 후보를 만나 '죽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말이 강 후보자에겐 들리지 않는가"라며 '여성 의제를 나중으로 미루는' 후보자는 자진사퇴만이 답이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중앙차세대여성위원회도 "우리는 '권력형 페미니즘', '선택적 페미니즘'이 아닌 공정과 책임의 여성 리더십을 갖춘 여가부 장관을 원한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