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노숙자가 될 뻔 했는데"…'은둔 스펙'으로 탈고립한 청년

▶ 글 싣는 순서 ①빚 노트, 소주병 덩그러니…고독하게 떠난 청년 소연씨의 '흔적' ②[르포]쓰레기 속 웅크린 청년들…닫힌 방 안에 외로움이 쌓인다 ③빈 주머니에 다시 방문 닫는다…'고립·은둔 중년' 될까 걱정만 ④'우울 감옥' 사는 청년 "고립으로 찐 살 20kg, 내 마음은 쓰레기장" ⑤"저는 30대 고립청년입니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는…" ⑥"죽거나 노숙자가 될 뻔 했는데"…'은둔 스펙'으로 탈고립한 청년 (계속) "내 미래는 죽거나, 노숙자 둘 중 하나일 거야…" 1998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 유년기를 겪어온 90년대생인 김초롱 씨(32)는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빚더미에 앉아 가족 모두가 고립된 경험을 했다.   급기야 가정폭력까지 시달렸던 초롱 씨는 17세가 되던 2010년. 일상이 무너진 채 무려 8년 동안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방에 갇혀 죽음을 떠올리는 날들도 잦아졌다. 23세 즈음 다니던 대학마저 제적당하고 집안 갈등이 극에 달했을 무렵 초롱 씨는 삶의 의지마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아무도 그의 '공백'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초롱 씨는 학업이든 취업이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지만, 사회는 틈이 생긴 자신을 끼워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에 휩싸였다.   어렵게 문밖에 나선 김 씨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했던 은둔 청년들을 돕는 단체인 K2 인터내셔널코리아(이하 K2)의 공동 숙소에서 생활하며 회복하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 다시 사회로 연결된 초롱 씨는 오랫동안 은둔 생활을 숨기고 부끄러워했지만, 더 이상 감추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 은둔도 스펙이다 "라고 외치며 자신의 탈고립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청년들을 돕는데 힘쓰고 있다. 현재 초롱 씨는 자신 같은 은둔 생활을 했던 우승규 대표와 2021년 재정난으로 폐업한 K2의 직원 2명과 뜻을 모아 2022년 고립·은둔 청년들을 지원하는 '안무서운회사'를 설립했다.  고립 청년들 80%, 현 상태 벗어나고 싶지만…'절반' 제자리로  보건복지부가 2023년 고립·은둔 상태 2만13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고립·은둔 위험 상태인 1만2105명 가운데 80.8%가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했지만 대부분 실패를 경험했다.   김 씨는 오랜 은둔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고립의 문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비결은 '취업'이 아닌 ' 지지 '라고 말한다.   은둔 당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초롱 씨는 취업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정작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불안과 힘든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그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실패해도 돌아갈 수 있는  공간 , 공감과 위로를 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새로운 무언가 시도할 수 있는  힘 을 얻는 것이었다. "당시 저희 가정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해 주기엔 역기능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오히려 K2라는 회사를 통해 가족이 해주지 못했던 사회·정서적인 지지를 받았어요. 또 저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깨닫는 인지 변화 자체가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 같아요."   고립·은둔 청년들끼리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과정은 선순환 구조를 낳는다.   청년재단은 지난해 '잘나가는 커뮤니티'를 통해 고립과 은둔을 경험한 38명의 청년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역할을 찾아가기 위한 회복의 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청년들은 마음 돌보기 및 진로 탐색 워크숍 등을 통해 회복에 집중했다. 또 봉사활동, 매체 인터뷰, 포럼 등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고 고립·은둔에 대한 인식 개선에 앞장섰다.   박재영 청년재단 이음사업팀장은 "프로그램을 통해 회복한 청년들이 사회로 역할을 찾아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꽤 있다. 서로 연대한 청년들이 다시 고립되지 않고 자립한 이후에도 사회로 의미있는 연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독사 위험군' 고립 청년 배제된 정책…"인식 개선 먼저"  8년 간 은둔 생활의 터널은 길고도 길었다.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 다시 재고립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갔다. 초롱 씨가 방 안에서 주춤하고 있는 사이 사회가 청년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자신의 현실이 희미해질수록 죽음의 그림자는 또렷해졌다.   고립 기간이 길수록 자살 충동과 시도 비율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23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를 보면 10년 이상 고립·은둔 생활을 한 청년의 89.5%가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으며, 41.9%가 실제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사회적 고립 등으로 인해 청년들의 자살률 증가 현상은 고독사 통계에서도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고독사 비중이 전체 연령대 중 20대가 59.5%로 가장 높았고, 30대는 43.4%로 그 뒤를 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의 고독사 예방 대책은 중·고령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청년층은 철저하게 ' 고독 사각지대 '에 놓여있다.   "오랫동안 고립과 은둔 생활을 해온 청년들이 죽음을 떠올리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지금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어떤 이유로든 그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을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만 판단하고, 결국 기준에 미치지 못한 청년들을 비난하거나 외면하게 만들고 있죠."   김성아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또한 청년들의 고립 상태는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초개인화되는 현상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경쟁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서로 돕는 경험을 하지 못한 채 성장한 청년들이 굉장히 좁은 문인 성공을 위해서 단계마다 계속 시도하지만 성공할 확률은 낮고, 실패 가능성은 커지는 구조죠.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도움받을 수 있는 누구도 없이 고립이 되는 겁니다."   초롱 씨는 사실상 '고독사 위험군'인 고립 청년들이 배제된 정부의 고독사 예방 대책 개선에 앞서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취업을 예로 들면, 공백기 자체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사회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언제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다시 시작해 보고 그러다 재고립하더라도 회복의 과정을 거친 뒤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어야 해요. 한 번의 실패로 완전히 밀려나는 구조가 아니라 언제든, 나이가 얼마든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들이 주어지면 자살률 자체가 굉장히 유의미하게 완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고독 死각지대, 고립청년] 나의 고립 점수는 몇 점일까요? 사회적 고립과 은둔 관련 인지적, 정서적 증상에 대한 테스트를 참여해보세요.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접속! https://m.nocutnews.co.kr/story/s250617/